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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우 목사

아침묵상 커피와 함께 @양산물금 브레밋



오늘도 좋은 하루를 주신 하나님 감사합니다. 날씨가 좀 더 쌀쌀해 졌지만 겨울인만큼 쌀쌀한 날씨에 따뜻한 옷을 입을 수 있고, 따뜻한 커피와 먹을 것을 주신 것도 감사합니다.

사랑하는 아내와 딸과 늘 함께 할 수 있어서 감사합니다.

딸을 선교원 잘 데려다 주고 올 수 있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주님 오늘 하루도 함께 해주시고 말씀의 양식으로 영육을 먹여 주시옵소서. 주님의 말씀과 기도로 평범한 일상의 일들과 사용하는 것들까지 주님이 받으시기 합당한 예배의 성물로 바꿀 수 있도로 저의 맘에 늘 경건을 훈련하는 마음 허락하옵소서.

저의 합당하지 못한 정욕의 마음과 제어되지 않는 화, 감정들 생기지 않게 도와주시고, 혹여나 그럴경우 저의 잘못을 즉시 깨달아 회개하게 하옵시며 다시 주님의 얼굴을 뵈옵기에 부끄럽지 않은 모습 되게 하소서.


오늘도 주님의 오심을 기쁨으로 기다리는 소망가운데 거하게 하시며 나에게 주어진 시간과 건강과 지성과 육신의 모든 것을 통해 주님 섬기며 내 이웃을 섬기며 교회를 섬기며 가정을 잘 섬기게 도와 주시옵소서.

오늘 교회의 사랑하는 성도들의 가정 축복하여 주시고, 모든 일과에서 주님이 함께 하심을 감지하며 원하며 은혜를 입으며 감사하는 하루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님 늘 감사합니다. 죽음에서 날 건져주신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드립니다. 아멘.












하나님의 말씀은 왜 이렇게 간단하면서도 어려울까? 그냥 믿으면 너무 쉬우면서도, 이해하려고 애를 쓰고 답을 얻을수록 쌓이는 질문이 더 많아지게 된다.

왜 하나님은 이 '옛 뱀'을 통해 사람을 타락시키는 것을 OK하셨는가? 뱀이 얻어가는 것이 도대체 뭐기에 뱀은 왜 하나님을 거스려 행하였던 것인가? 그런것에 대한 답은 다 추측이 된다. 배로 다니고 종신토록 흙을 먹는 다는 저주가 사람들이 받는 저주에 비해 어떻게 저주가 되는지도, 생각하면 할 수록 이해하기가 쉽지않다.

유대교에 따라면, 뱀은 단순히 창조에 필연적으로 존재하는 악의 자성이라 한다. 사람의 내면에 이미 들어있는 끌리는 힘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필연적으로 흙에서 만들어졌기에, 선한 것에도, 악한 것에도 다 끌리는 존재라는 것이다. 과연 그럴까? 어느 정도 믿을 만한 의견인 것 같다. 그래야 자유의지란 것에 의미가 부여될 것이니까.

하지만 그 중간에서 늘 우리를 바른 선택으로 인도하는 잣대가 있기에 우리는 자유의지를 가지고서도 옳은 것만을 늘 선택할 힘이 있다는 것으로 생각이 된다. 그 잣대가 바로, 하나님의 말씀이 아닐까.

하나님의 말씀에 우리는 늘 옳은 것과 그른 것의 판단을 맡길 수 있고, 옳은 것을 선택할 자유를 택하며 고로 하나님의 축복을 누릴 자격을 가지게 된다.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 말씀이 아닌 그 무엇에 우리의 잣대를 넘겨주면, (나의 기준이 될 수도, 사단의 유혹이 될 수도, 세상의 철학과 학문이 될 수도, 어떠한 기준도 생기지 않는, 변형되고 늘 움직일 수 있는 기준, 판단의 근거등..) 요동치는 물위의 배가 되버리고, 모래 위에 지은 성이 되 버린다. 우리는 움직이지 않는 근간 기초가 필요하다. 유혹하는 자들은 자유를 외치며 그것마저도 필요없다고 한다. 결국 자신의 유익을 위하는 근간이 되고 각자의 눈에 보기에 선하고 악한 것을 나누며, 자유의 범위가 확장되는 듯 싶지만 결국 안으로 터져 버리는 블랙홀 같은 결과를 불러 오게 되는 것 아닌가..

그럼에도 우리는 남을 해치지 않는 범위안에서 우리로 자유를 누릴 수 있게 하는 최소한의 법에 기대어 살고 있다. 그것마저도 인류가 이루기에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고, 많은 피를 흘리게 되었다.

사실 이것이 이웃사랑의 동전의 한 면이 아닌가.

예수님은 동전의 다른 면을 이야기 하신다. 남을 위하는 범위 안에서 우리의 자유를 쓰라고 한다. 이것은 많은 피를 흘릴 필요가 없다. 내 피만 흘리면 되는 싸움이다. 남의 희생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 나의 희생 하나면 이룰 수 있는 세상이다.

전자가 법으로 유지되는 아슬아슬한 발란스로 유지되는 사회라면, 후자는 어디에든 천국의 기초를 만들고 그 위에 무너지지 않는 하나님의 도시를 세우는 복음의 힘이다.


사단의 저주는 흙을 종신토록 먹는 저주이다. 사람을 흙으로 만드신 하나님은 하나님의 잣대, 그의 말씀을 버린 결과로 사람은 다시 흙으로 돌아간다고 선포하셨다. 사단의 열매는 결국 '무'로 돌아가는 인생 위에 군림하는 것이다.

바람을 먹는 것 같고, 공기를 잡으려는 것 같은, 허무함 속에서 기어다니고, 허무함만을 삼키며, 허무함을 자기 자랑으로 내세울 수 밖에 없는 자기 교만의 최후에 들어맞는 결과이다. 욕망이 있으나, 결코 채우지지 않는 그 갈망함 속에 결코 성취되지 못하는 운명.

이런 이를 '신'으로 모시는 자의 배도 마찬가지, 채워지지 않는 블랙홀이며, 비록 살아있더라도, '무'가 그의 뿌리이니 '무'를 얻게 되는것이 아닐까..

주님 '흙'을 먹고 '흙'속에서 기어다니는 존재와 내 정체성이 섞이지 않게 하소서. 비록 흙에서 만들어졌으나, 보여주신 영광의 길로, 하늘로 이어지는 그 계단으로 날마다 승천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땅에 있는 것을 거룩하게 하신 주님의 능력도 내게 주셨으니, 내 삶의 모든 것에 의미를 부여하실 수 있는 주님의 선하심을 힘입어, 나도 이생의 모든 것을 천국을 누리게 하는 성물로, 또 천국으로 가는 발판으로 사용하게 하옵소서.


오늘도 천국의 시민으로 인쳐주신 성령의 보장하심을 따라 모든 상황에서 주님의 자녀같이 생각하고 행동하게 하여 주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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