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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우 목사

시편 59편 아침 묵상 QT: 주는 나의 산성이시요, 나의 환란 날에 피난처심이니이다


Psa 59:9 하나님은 나의 산성이시니 저의 힘을 인하여 내가 주를 바라리이다

Psa 59:10 나의 하나님이 그 인자하심으로 나를 영접하시며 내 원수의 보응받는 것을 나로 목도케 하시리이다

Psa 59:11 저희를 죽이지 마옵소서 나의 백성이 잊을까 하나이다 우리 방패되신 주여 주의 능력으로 저희를 흩으시고 낮추소서

Psa 59:12 저희 입술의 말은 곧 그 입의 죄라 저희의 저주와 거짓말을 인하여 저희로 그 교만한 중에서 사로잡히게 하소서

Psa 59:13 진노하심으로 소멸하시되 없기까지 소멸하사 하나님이 야곱 중에 다스리심을 땅 끝까지 알게 하소서(셀라)

Psa 59:14 저희로 저물게 돌아와서 개처럼 울며 성으로 두루 다니게 하소서

Psa 59:15 저희는 식물을 위하여 유리하다가 배부름을 얻지 못하면 밤을 새우려니와

Psa 59:16 나는 주의 힘을 노래하며 아침에 주의 인자하심을 높이 부르오리니 주는 나의 산성이시며 나의 환난 날에 피난처심이니이다

Psa 59:17 나의 힘이시여 내가 주께 찬송하오리니 하나님은 나의 산성이시며 나를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이심이니이다


할렐루야 사랑하는 성도님들, 추운날씨 몸조심하시고, 오늘도 승리하시길 축원합니다. 어제와 마찬가지로, 오늘도 다윗은 자신을 대적하는 악인들로 인하야 하나님께 탄원하는 찬송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 우리가 알아야 될 것은 이것이 음율에 맞춘 찬송이라는 것입니다. 대적들을 울부짖는 굶주린 개처럼 자세하게 표현하고, 하나님의 아주 세세한 심판의 모습이 묘사된 찬양입니다. 사실 찬양에 이런 가사를 넣어 부르라고 하면 우리 정서에 맞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이 성경적 정서인 것을 우리가 간과해서는 안됩니다. 실제로 탄압받고, 고통중에 있는 하나님의 성도들은 하나님의 공의 심판을 찬양으로 노래 부를 수 있어야 합니다. 13절,


Psa 59:13 진노하심으로 소멸하시되 없기까지 소멸하사 하나님이 야곱 중에 다스리심을 땅 끝까지 알게 하소서

이런 원수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하심을 우리가 노래 부르는 방법은 이것을 영적전쟁으로 먼저 바라 봐야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오시고, 우리는 영적세계에 대한 더 폭넓은 계시를 받았습니다. 하늘의 정사와 권세자들이 인간을 조정하고, 인간으로 하여금 타락한 선택을 하게 만드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특정인간에 대한 혐오로써, 심판을 찬양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공의의 결과로 소멸될 악인들과 악인들의 배후에 있던 세력들을 믿음으로 보고 찬양할 것입니다.

오늘 3절과 9절을 비교해서 좀 묵상했으면 좋겠습니다.


Psa 59:3 저희가 나의 생명을 해하려고 엎드려 기다리고 강한 자가 모여 나를 치려 하오니 여호와여 이는 나의 범과를 인함이 아니요 나의 죄를 인함도 아니로소이다
9절 하나님은 나의 산성이시니 저의 힘을 인하여 내가 주를 바라리이다 ---

대조되는 두가지 삶의 모습이 나오고 있습니다. 하나는 성도를 해하려고 기다리는 악인들의 기다림의 모습이고, 다른 하나는 성도가 구원을 받고자 주를 기다리는 모습입니다. 하나는 스스로가 강한자들이라고 여기는 자들이고, 다른 하나는 하나님을 산성이라 하고, 하나님을 힘이라고 하는 자입니다. 육적인 자들과 영적인 자들의 극명한 차이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남을 해하려는 자들의 베이스에는 자신의 힘이 깔려 있음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구원을 기다리는 자들의 베이스에는 자신이 약하고 무능함을 시인하는 데 있음을 알아야 될 것입니다. 다윗은 결코 연약한 자가 아니였습니다. 다윗은 용사입니다. 골리앗이 무너뜨리고, 골리앗이 휘둘렀던 칼을 차고 무기삼은 자입니다. 그의 물매실력은 거의 살인적입니다. 많은 용사들이 그의 용맹함을 보고 그를 따를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의 시편의 노래를 엿보면, 다윗이 맹렬한 용사임을 잊게 만듭니다. 연약하고 늘 도움이 필요하고, 스스로 설 수 없음을 고백하는 내용들 뿐입니다. 내가 연약하고, 내가 도움이 필요하고, 내가 스스로 설 수 없는 상태에 있다면, 과연 찬양할 것이 무엇이 있을까요? 내 삶에서 늘 필요한 것들만 보이는데, 거기서 찬양이 될 만한 것이 무엇이 있겠느냔 말입니다. 하지만, 다윗은 시는 늘 필요가 채워짐을 노래하는 시입니다. 홀로 되어 있으면서, 홀로가 아니라고 고백하는 시입니다. 곧 죽을 것 같은 환경에 놓여 있으면서, 구원과 생명을 노래하는 시들로 차고 넘칩니다. 자신의 상황에서 반대의 상황을 늘 노래하고 기뻐하는 인물이 바로 다윗입니다.

16절을 보십시오.


Psa 59:16 나는 주의 힘을 노래하며 아침에 주의 인자하심을 높이 부르오리니 주는 나의 산성이시며 나의 환난 날에 피난처심이니이다

다윗의 세상에 있던 많은 영웅들이 자신의 힘을 소재로 한 노래를 만들어 부른 것과 정반대로, 그의 약함에서 하나님의 힘을 노래합니다. 세상의 전쟁의 영웅들이 맹렬함과 무자비함을 노래할 때, 다윗은 전쟁의 사람이지만,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그 어떤 무기보다 강하고 능력있음을 노래합니다. 방어벽이 쳐진 요새에서 안심하고 살고 싶었던 다윗일 것입니다. 하지만, 광야의 시절, 그에게 유일한 요새는 하나님임을 노래하고 있고, 피난처 또한 깊숙히 숨겨진 동굴이 아니라, 그의 주심을 노래합니다.


17절 나의 힘이시여 내가 주께 찬송하오리니 하나님은 나의 산성이시며 나를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이심이니이다

다윗이 한번은 산성에 우역곡절 끝에 산성에 들어가 살게 된적이 있습니다. 광야에서 도망다녔을 때 보다, 얼마나 안심이 되었을 까요? 사울이 온다고 쳐도, 방어벽으로 시간을 벌 수 있고, 조약을 맺은 이방인의 도움을 받을 시간을 벌 수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사울이 아니라, 생각지도 못한 아말렉인들이 자신들이 잠시 성을 비운사이 모든 가족들을 탈취해 갔습니다. 성을 믿고 자신들은 잠시 나갔었는데, 돌아와보니 자신들의 가장 소중한 자식들과 아내들이 사라진 것입니다. 그때 다윗의 마음이 어땠을 까요? 이런 산성을 믿었던 내가 바보였지, 얼마나 자책하고 후회했겠습니까? 하지만, 성경을 보면 이내 다윗은 힘을 냈다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묻습니다. 지금 따라가면 잡을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이 응답하시고, 결국 모두를 되찾아 옵니다. 그날 이후 다윗은 다시는 산성이나 요새에 마음을 두지 않게 되었을 겁니다. 요새가 있던 없던 우리를 보호하시는 힘은 하나님이십니다. 세상사람들의 요새가 무엇일 까요? 그들이 오랬동안 쌓아왔던 관계일 수도 있고, 재물일 수도 있고, 명예와 위치일 수도 있습니다. 자신을 방어하고 남을 공격하는 유리한 고지들이 다들 있을 것입니다. 성도들의 요새는 무엇이 되야 할 까요? 다윗은 요새의 필요성을 잘 알았습니다. 그도 전략가이고, 전쟁의 사람이니까요? 하지만, 그가 요새를 세우며 생각하는 바는 달랐습니다. 이 요새도,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않으면 아무것도 막아 줄 수 없다. 내가 아무리 힘을 키워도, 그 힘이 나를 구원하는 것이 아님을 다윗은 인생에서 다시 또 다시 겪에 됩니다. 그의 인생의 결론을 우리에게 찬양으로 노래 불러주고 있습니다. 주의 힘이 나의 힘이요. 주가 나의 산성이시라,, 그 힘에는 한계가 없고, 그 튼튼함에는 무엇도 뚫고 들러올 수 없습니다. 그리고, 그 힘과, 그 능력의 베이스에는 다윗이 늘 노래하듯이, 주의 인자하심이 기초가 되고 있습니다. 우리도 찬양했으면 좋겠습니다. 아침에 주의 인자하심을 높이 불렀으면 좋겠습니다. 주는 나의 산성이시요, 나의 환란 날에 피난처심이니이다. 환란 날이 없을 수는 없으니, 우리 확실한 피난처를 알아 둡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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