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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53편 Morning QT

  • 김진우 목사
  • 2021년 1월 5일
  • 5분 분량



Psa 53:1 어리석은 자는 그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도다 저희는 부패하며 가증한 악을 행함이여 선을 행하는 자가 없도다

Psa 53:2 하나님이 하늘에서 인생을 굽어 살피사 지각이 있는 자와 하나님을 찾는 자가 있는가 보려 하신즉

Psa 53:3 각기 물러가 함께 더러운 자가 되고 선을 행하는 자 없으니 하나도 없도다

Psa 53:4 죄악을 행하는 자는 무지하뇨 저희가 떡 먹듯이 내 백성을 먹으면서 하나님을 부르지 아니하는도다

Psa 53:5 저희가 두려움이 없는 곳에서 크게 두려워하였으니 너를 대하여 진 친 저희의 뼈를 하나님이 흩으심이라 하나님이 저희를 버리신고로 네가 저희로 수치를 당케 하였도다

Psa 53:6 시온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여 줄 자 누구인고 하나님이 그 백성의 포로된 것을 돌이키실 때에 야곱이 즐거워하며 이스라엘이 기뻐하리로다


할렐루야 오늘 이 아침도 여러분의 가정에 평안과 기쁨이 넘치기를 축복합니다. 오늘 시편의 말씀은 하나님이 없다고 마음에 믿는 자의 어리석음과 악함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그 당시에도 이런 사람이 있었는 가 봅니다. 신이 없다고 믿는 방식의 사고는 그렇게 오래 되지는 않았습니다. 보이지 않는 영역에 우리보다 강한 존재가 있다는 사실을 인류는 오래전부터 믿어 왔죠. 하지만, 계시없이 인간이 신의 영역을 그저 생각하고 상상하는 것은 결국 재미를 위한 미천한 신화나, 신앙이 아닌 밋밋한 철학으로 와전되기 마련이었죠. 요즘에는 신의 존재란 것이 갈수록 애매해 지고 있습니다. 불과 10년 20년 전만해도, 신을 부정하는 무신론이 대세였습니다. 멋있게 보였습니다. 논리적이고 과학적이며 날까로운 지성을 가진 자들이 대표하는 사상이 무신론이였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지성인들 사이에 신적 존재들에 대한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다시 다양한 신을 믿는 자리까지로 돌아와 버렸습니다. 인간보다 더 유능한 생물체의 존재를 이 드넓은 우주가운데서 부정할 수 없다 하여 인간보다 결국 뛰어난 것이 신이 아닌가,, 논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이런 신 저런 신, 신에 대한 아이디어가 계속 파생되고 있습니다. 인공지능 신도 등장하여 경배하는 세대에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많은 신을 수용하고 받아들이는 이 세태에도, 놀라운 점은, 창조주 유일신 하나님에 대한 논의는 끝내 부정한다는 것입니다. 이 모든 세상을 만드신 바로 그 한 분, 스스로 존재하는 그 분, 처음이자 마지막이요, 영원하신 그 분 하나님을 결국 신을 논하는 모든 자리에서 배제하여 버립니다. 뭐가 문제일까요?


바울이 아테네 아레오 바고에서 철학자들과 종교자들 앞에서 이름없는 신을 설명해 줄 때가 생각납니다. 그들에게도 무수한 신들이 있었습니다. 당대의 과학자들이고 철학자들. 지성인들입니다. 하지만, 누구하나 유일신, 창조주 하나님에 대한 관념은 생각조차 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창조주 하나님은 이름 없는 신이 되버려 구석에 놓여 아무도 보지 않고, 인정하지도 않고 경배하지도 않았습니다. 어떻게 인간은 이런 모든 인위적이고 인공적인 잡신을 상상하면서도 하나님이 만드신 창조세계가 증명하고 증언하는 유일신 하나님의 존재는 거들떠 보지도 않을까요. 과연 이것이 지성인들만의 문제겠습니까? 우리의 가정의 문제이고, 이웃의 문제입니다. 오늘 시편의 기자는 이것이 고칠 수 없는 인간의 마음의 문제라고 노래합니다.


1절 어리석은 자는 그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도다 저희는 부패하며 가증한 악을 행함이여 선을 행하는 자가 없도다.

여기서 놀라운 것은 하나님이 없다라고 그 마음에 하나님을 부정하는 자를 부패하며 가증한 악을 행하는 자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하늘에서 내려 인생을 보시고 그들의 마음의 상태를 다 체크하시고 내린 결론이 바로 2절3절 입니다.


Psa 53:2 하나님이 하늘에서 인생을 굽어 살피사 지각이 있는 자와 하나님을 찾는 자가 있는가 보려 하신즉

Psa 53:3 각기 물러가 함께 더러운 자가 되고 선을 행하는 자 없으니 하나도 없도다


인류 모두가 함께 악을 행하는 더러운 공동체가 되었다고 합니다. 선을 행하는 자가 좀 없는 것도 아니고 아예없다고 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고백입니다. 우리는 선한 사람들이 주위에 그래도 있다라고 생각하죠. 우리는 거울을 보면서 이 정도면 괜찮은 인간이지 생각합니다. "분명 실수도 하지만 그래도 뉴스에 나오는 질나쁜 악질은 아니다. 때로 좋은 일도 할 역량이 되는 선한 축에 끼는 자 정도는 된다.." 이렇게 사실 생각할 것입니다. 성경은 이런 인간의 마음을 정신승리한다라고 합니다. 성경 여러 군데에서 인간의 본질의 악함을 이야기 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이 가장 깊이 와 닿습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아주 모범된 선한 젊은 청년이 예수께 다가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방법, 자격을 이야기 하고 있었습니다.


Mar 10:17 예수께서 길에 나가실쌔 한 사람이 달려와서 꿇어 앉아 묻자 오되 선한 선생님이여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그렇죠. 그때 말씀하신 예수님의 대답을 기억해 봅니다.


Mar 10:18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어찌하여 나를 선하다 일컫느냐 하나님 한분 외에는 선한 이가 없느니라


하나님 외에는 선한 이가 없다. 그 말은 선한 인간이 하나도 없다는 것이죠. 아니 그럼, 우리가 생각하는 선한 사람들은 선한 게 아닙니까? 아닙니다. 여러분. 우리가 선하다고 하는 것은 선한 행동을 보고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선한 행동을 하는 것과 선한 것은 다릅니다. 선하지 않은 사람도 선한 행동은 할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있죠. 선한 행동을 하니까, 그 사람이 선하다고 얘기하는 것은 우리가 만들어낸 개념이자 논리적 모순입니다. 선한 사람은 선한 행동을 할 수 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선한 행동이 선한 사람을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사회가 나를 선한 행동을 하도록 만들수 있고, 부모님이 나를 그렇게 교육시켰을 수도 있고, 심지어 내 스스로가 그런 행동 하는 것을 좋아하게 되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환경이 틀려지고, 조건이 틀려지고, 모든 것이 다 다른 상황에서도 여전히 내가 그렇게 선할 수 있을까요?


하지만, 우리의 하나님은, 어떤 상황에서도,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어떤 변수들의 작용해도, 늘 선한 행동을 하시는 분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는 본질적으로 선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본질적으로 선하지 못하기 때문에 변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우리가 선하게 보이는 사람을 보고 선하다고 이야기 하는 것은 서로의 공감대를 인정하고 정신승리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선하게 보이는 사람이 하나님이 없다라고 말하는 거 봤습니까? 네, 아주 흔한 일이죠. 우리 주위에도 많이 있습니다. 내 친구가 그렇고 가족이 그렇습니다. 착하게 보이는 사람이 하나님의 존재를 부정하는 이면에는 (악인도 마찬가지) 결국 자신이 본질적으로 타락하여 썩어가고 있는 악질이라는 사실을 인정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만이 선하시다는 말은 다르게 말하면 그분만이 영원하시고, 그분만이 모든 것을 충족하시고, 그분만이 우리의 해답이라는 말입니다. 우리가 선한 행동으로 아무리 포장한 다 한들, 그것이 우리의 선함을 증명하지 못합니다. 인류에게 희망이 있다라고 믿는 것이 바로 정신승리입니다.


인간이 착한 일을 할 수 있는 역량이 있기에, 인간 자체를 희망있게 보는 오류를 범합니다. 하지만 세상에는 선한 사람이 단 하나도 없습니다. 만약 있었다면, 그가 신일 것입니다. 능력과 지식이 우리 보다 월등함으로 신이 정의되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의 사람들은 그런 존재를 신으로 보려고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성경은 확실히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완전한 선함이 하나님을 하나님되게 정의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은 절대적 선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이고, 절대적 선을 부정하고 나를 대신 선의 자리에 올려놓고 나를 선한 것이라 일컫는 막대한 죄입니다. 이것을 완전 부패하며, 가증하며, 선을 행함이 없는 것이라, 1절에서 노래부르는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이 유일하신 하나님이신 이유가 분명하죠. 그분만이 선하시기 떄문입니다. 누구도 완벽히 선하지 않은 이 우주에 오로지 선하신 분이 우리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왜 네가 나를 선하다고 일컫느냐, 선하신 분은 오직 하나님이시라.. 어떤 상황에서도, 어떤 오해에서도, 어떤 변수속에서도, 늘 선함을 실천할 수 있었던 자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를 젊은 이는 선하다고 하면서도, 하나님으로는 바라 보지 못 했습니다. 자신도 선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런 자들에게는 하나님이 보이지도 않고 하나님을 볼 수도 없습니다. 하나님이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오로지 자신의 썩어짐과 타락함과 파멸함을 깨닫는 자가 복된자입니다. 그래서 내 속에 존재하지 않는 선에 목말라 할 떄, 주 예수안에서 해답을 보게 되고 존재하시는 하나님을 믿고 찬양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시간 우리 같이 기도합니다. 우리 모두도 내가 선한 줄 알고 살았던 과거가 있습니다. 이제는 그런 주장 하지 못하죠. 우리가 누군지 알게 해주신 것은 오로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아버지꼐서 이끄시지 않으면 누구도 내게 오지 못하니..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이끄셔서 예수를 통해 하나님을 경험하고 믿게 된 것입니다. 우리 이시간 기도할때, 우리의 사랑하는 사람들 아직도 하나님을 인정하지 못한다면, 하나님이 이끄셔야 됩니다. 하나님이 이끄셔야 예수안에서 오로지 해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그들에게 우리가 받은 은혜가 임할 수 있도록, 같이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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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하셨네요:) 메시지가 보내졌습니다. 조그만 기다려 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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