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sa 50:1 전능하신 자 하나님 여호와께서 말씀하사 해 돋는 데서부터 지는 데까지 세상을 부르셨도다
Psa 50:2 온전히 아름다운 시온에서 하나님이 빛을 발하셨도다
Psa 50:3 우리 하나님이 임하사 잠잠치 아니하시니 그 앞에는 불이 삼키고 그 사방에는 광풍이 불리로다
Psa 50:4 하나님이 그 백성을 판단하시려고 윗 하늘과 아래 땅에 반포하여
Psa 50:5 이르시되 나의 성도를 네 앞에 모으라 곧 제사로 나와 언약한 자니라 하시도다
Psa 50:6 하늘이 그 공의를 선포하리니 하나님 그는 심판장이심이로다 (셀라)
Psa 50:7 내 백성아 들을지어다 내가 말하리라 이스라엘아 내가 네게 증거하리라 나는 하나님 곧 네 하나님이로다
Psa 50:8 내가 너의 제물을 인하여는 너를 책망치 아니하리라 네 번제가 항상 내 앞에 있음이로다
제사로 언약한 자들. 예배로 언약한 자들, 그것은 당연히 성도들 일 것입니다. 5절 나의 성도를 네 앞에 모으라 곧 제사로 나와 언약한 자니라. 그런데, 그런 성도들을 데리고 하나님이 어떤 하나님이심을 보여주시냐, 다음절에 심판하시는 하나님임을 보이십니다. 6절, 하늘이 그 공의를 선포하리니, 하나님 그는 심판장이심이로다. 여기서 심판하시는 하나님을 노래하는 것은 이방인과 믿지 않는 자들을 심판하심을 보여주기 위한다, 생각할 수 있지만 이것은 성도들에 대해 노래하다 나온 하나님 모습입니다. 성도들에게도 심판이 있을 수 있는 것을 노래합니다. 어떤 부분에서 우리가 하나님의 판단을 받고 있는지, 주의 깊게 묵상하는 이 시간 되길 원합니다. 7절, 이스라엘아 내가 네게 증거하리라. 이 말씀은 하나님이 증거를 제출 하겠다. 우리 편에 서는 것이 아니라, 고소하는 쪽에 서십니다. 법정에서 판단을 하는 과정에 반드시 모든 증거가 제출이 되야지 올바른 판결이 이루어지죠. 오늘, 그의 백성 이스라엘, 영적 성도들을 모으시고, 증거를 제출하고 계세요. 도대체 구속받은 성도들을 데리고 하나님이 증거를 제출하시면서 까지 나무라고 판결하실 사항이 뭐가 있습니까? 5절 다시 보면, 우리는 제사로 하나님과 언약한 자들이라 했습니다. 그럼 그것이 힌트이죠. 제사의 관한 일입니다. 언약을 우리가 깬것 같은 데, 제사에 관련된 것이에요. 8절을 읽어 봅니다. 내가 너의 제물을 인하여는 너를 책망치 아니하리라, 네 번제가 항상 내 앞에 있음이로다. 어, 그런데, 하나님이 말씀하시길 제물에는 아무 흠이 없다 하시는 것 같습니다. 우리의 드리는 예배에서 우리가 가지고 오는 제물에 관해서는 책망할 사항이 없다. 그럼 뭐가 제사의 문제가 되고 있죠? 아니 예배를 자주 드리고, 예배의 제물이 흠잡을 것 없는데, 그것만큼 제사에서 중요한 게 있습니까? 제물의 퀄리티와, 제물의 횟수.. 제사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제물 아니겠습니까? 양과 염소와 수소와 각종 정결한 가축들의 희생,, 이것 자체를 드림이 제사이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예배이고, 내가 하나님께 이행하는 언약의 모든 것일 것인데, 여기에는 책망하실 것이 없데요. 그럼 된 것 아닙니까? 지금은 예배에 가축을 가져오지 않습니다. 대신 예배로 가져오는 가치있는 것들은 내 물질과 내 헌신의 시간과 노동일 수 있죠. 이것들 자체는 책망하지 않으신다고 합니다. 그런데, 다음 구절들을 읽어보면, 여기에 대해서도 우리가 떳떳해 하고 자만할 수 없는 이유가 보입니다.
Psa 50:9 내가 네 집에서 수소나 네 우리에서 수염소를 취치 아니하리니 Psa 50:10 이는 삼림의 짐승들과 천산의 생축이 다 내 것이며 Psa 50:11 산의 새들도 나의 아는 것이며 들의 짐승도 내 것임이로다
하나님의 입장에서, 제사의 제물의 원천은 어차피 자신이라고 밝히십니다. 세상의 모든 가축이 그의 것인데, 그것을 내게 예배로 가져옴 자체가 별로, 큰 기쁨이 되지 않는다,. 어차피 하나님 것인데, 나둬도 그분 것이고, 내가 큰 맘 먹고 가져온다해도, 하나님 것이에요. 우리의 드리는 예배의 물질과 헌신, 시간, 어차피 나둬도 하나님 것이고 가져와도 하나님 것입니다. 그렇게 생각해야 합니다. 가져온다고 해서, 우리가 하나님을 그렇게 기쁘게 하는 게 아닌 것을 지금 시편 기자가 깨닫고 노래하는 것입니다. 그럼 도대체 무엇을 예배에서 잘못하고 있는지, 무엇이 부족한지 궁금합니다. 12-13절 Psa 50:12 내가 가령 주려도 네게 이르지 않을 것은 세계와 거기 충만한 것이 내 것임이로다 Psa 50:13 내가 수소의 고기를 먹으며 염소의 피를 마시겠느냐
동물의 제사를 예배로 요구하셨던 하나님, 생각해 보면, 그 고기를 하나님이 먹으실 수 있는 것도 아니였고, 그 피를 마실 수 있는 것도 아니였습니다. 그런데, 이런 것을 예배로 드리라고 하신 의의가 뭔지를 우리가 잊고 있었던거에요. 예전 한 20년 전만해도, 길거리에 다니면 가끔 흰 종이를 깔아놓고, 음식을 내놓은 것을 짚 앞 대문들 옆에서 종종 볼 수 있었습니다. 조상이나 귀신들에게 드린다는 생각으로 음식을 내다 놓은 거죠. 요즘은 볼 수 없는 광경이 됐죠. 그런데 귀신이 과연 그것을 먹을 수 있습니까? 왜, 그런 상식적이지 않은 행동을 우리는 해 왔습니까? 하나님도 마찬가지, 그 고기를 하나님이 드실 것도 아니고, 그 피를 마실 것도 아닌 것을, 왜 제사를 그만의 독특한 방식으로 드리라고 명하셨습니까? 제물의 드림의 형식보다, 그 형식에 내포되어 있는 의미가 예배를 예배답게 한다는 말로 들립니다. 내가 수소의 고기를 먹으며 염소의 피를 마시겠느냐? 제물이 예배를 예배답게 하는 것이 아니라면, 도대체 우리가 잘못한 것이 무엇이기에, 하나님이 증거를 제출하시고, 심판의 하나님으로 나타나실까요? 14-15절
Psa 50:14 감사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며 지극히 높으신 자에게 네 서원을 갚으며
Psa 50:15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
아하 우리의 예배에 무엇이 빠져 있는지를 노래합니다. 참제사는 수소와 염소로 드리는 것이 아니라, 무엇으로 드리는 것이다.. 감사로 드리는 것이다.. 참 예배는 동물의 고기와 피를 드리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하나님께 약속했던 것을 이행하는 것, 곧 서원을 갚는 것으로 예배를 드린다. ---- 잠시 생각해 봅니다.
하나님은 이런 예배를 원하시고, 우리는 하나님께 이런 예배를 드린다고 약속한 자들입니다. 그런데, 증거를 제출하셔서 보니 우리는 우리 예배가운데, 감사와 서원 갚음이 빠져있었다는 것이에요. 감사함은 통찰에서 나옵니다. 하나님의 개입하심이 내삶의 모든 영역에 통찰이 될 때, 감사가 나올 수 있지, 그냥 습관적으로 감사한다는 말은 습관적인 예배만큼 별 의미가 없습니다. 또한 서원의 갚음이란, 정말로 고마워 하는 사람이 하는 것입니다.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이 서원 한 것을 갚음에 인색하지 않습니다. 화장실 가기전과 나오고 나서가 다른 것이 대부분 사람들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성도들에게 그 이상을 요구하십니다. 제사라는 것,, 동물의 희생과 피를 뿌리는 것은 그속에, 우리의 진정한 감사가 있게 하기 위한 형식아니겠습니까? 잘려져서 피를 뿌리고 태워 없어져야 하는 운명이 사실 누구였느냐, 이겁니다. 나의 죄를 속건하기 위해 드리는 모든 제물의 형식은 내포하는 의미가 바로, 나를 살리기 위한 누군가의 희생을 기리기 위함입니다. 그리스도의 희생을 의미하기 위해, 제사를 드린다면, 그리스도와 그를 내주신 하나님 아버지를 감사함이 당연히 우리의 예배안에 간절히 내포되야 하지만,,, 형식적인 예배가 되고 있었습니다. 그 의미를 의식하며 깊은 감사로까지 가지 못했던 것이 하나님이 판결하시고 심판하실 부분이 되십니다. 서원은 나를 묶는 다는 뜻입니다. 어디에 나를 묶는 다는 것은, 나의 자유가 제한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께 묶여 있다는 것, 그럼으로 우리 삶 자체가 그분이 주시는 자유안에 묶여있는 삶의 예배로 보여드려야 합니다. 내가 그리스도께 늘 묶여있다는 것을 보이는 삶이 서원을 갚는 예배라 생각합니다. 이런 예배로 우리가 드리는 것을 회복할 때,, 어떤 환란에서도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라. 예배를 통해서 영광받으시는 하나님인 줄로 믿습니다. 그리고 올바른 예배를 드리는 자들에게 있어 모든 환란과 어려움은 오히려 하나님이 만나주시는 장이요, 그의 이름을 높이는 하나님의 계획이 된다는 것을 깨닫고 오늘도 우리는 감사와 서원을 갚는 예배의 삶을 실천하길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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