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0:6) 이방의 모든 신들을 차례로 섬겼던 이스라엘을 보며 우리는 무엇을 알 수 있습니까?
사람의 보이는 것에 대한 집착과 중독을 알 수 있습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발전 시키는 것보다, 자신들의 필요에 따라 바꿀수 있는 또한 유리하게 설득시킬 수 있는 우상을 택하는 것에 매력을 느끼게 됨을 알 수 있습니다.
우상의 문화가 결코 쉽게 대항할 수 있는 문화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미 형성된 우상의 문화는 사회 전반에 걸쳐 경제와 정치적 프레임을 형성하고 있었고, 그 사회에서 이득을 보며 삶을 영위하는데 우상의 문화가 최적으로 보일 수 있었던 것이기에, 사람은 자신에게 먼저 유리한 쪽으로 기운다는 것을 금방 알 수 있습니다.
그때 그 때의 풍을 쫓아 신앙도 바뀌는 이스라엘을 보며 우리는 하나님을 섬긴다 하지만, 사실, 많은 가시적 신앙인들도 사회 기류를 쫓아 기독교를 받아 들이고 여전히 그렇게 살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우상 숭배와 그다지 다를 게 없는 이해관계에서 택하게 된 가시적, 피상적 신앙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2.사사기서의 가장 처음 장면(1:1-) 과 10장 17-18절 암몬자손과 싸우려고 나가는 이스라엘의 장면의 차이점을 설명해 보시오.
Jdg 1:1 여호수아가 죽은 후에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묻자와 가로되 우리 중 누가 먼저 올라가서 가나안 사람과 싸우리이까 Jdg 1:2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유다가 올라갈지니라 보라 내가 이 땅을 그 손에 붙였노라 하시니라
VS
Jdg 10:17 그 때에 암몬 자손이 모여서 길르앗에 진 쳤으므로 이스라엘 자손도 모여서 미스바에 진 치고 Jdg 10:18 길르앗 백성과 방백들이 서로 이르되 누가 먼저 나가서 암몬 자손과 싸움을 시작할꼬 그가 길르앗 모든 거민의 머리가 되리라 하니라
여호와를 리더로 삼았을 때와 여호와를 리더로써 잃어버린 이스라엘의 정신적 상태를 잘 들여다 볼 수 있습니다. 사사기의 첫장은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리더로써, 그들 앞에 나가 싸우시며, 이스라엘은 자신감과 확신으로 전쟁터에 나가 승리함을 볼 수 있습니다. 반대로, 지금 암몬이라는 적을 앞에 두고 있는 모양을 봅니다. 원어로 보면, 암몬 자손은 전쟁을 위해, 진을 갖추고 싸우러 왔다라고 하지만, 이스라엘은 그저 모였다라고 묘사하고 있습니다. 전쟁은 승패는 벌써 가려진것입니다. 거기다, 이스라엘 지도부들의 멘탈을 보면, 아무도 답이 없고 서로 나가서 싸우기 싫은 모양새입니다.
사사기 1장에서는 누가 먼저 나가서 싸우냐는, 하나님의 선택하심을 받고 누가 먼저 전쟁으로 나가냐 였고, 여기서 누가 먼저 나가서 싸우냐는, 나는 나가기 싫으니 너가 나가는 것은 어떻냐,, 서로 두려움속에서 남이 나서주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중심에 가졌던 자들과, 하나님을 잃어버린 자들의 모습을 잘 대조해 주고 있습니다.
3.(10:13) “내가 다시는 너희를 구원하지 아니하리라" 이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 들일 수 있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이런 말씀을 하시지만, 사실, 이스라엘의 구원을 위해서, 이미 돕 땅의 입다를 준비해 두셨고, 그 이후로도 사사가 나옵니다. 특히 삼손의 경우 어머니의 뱃속에서부터 나실인으로 준비하시고, 성령으로 감동 시키시는 것을 보아서, 이 말은 단지 하나님께서 얼마나 사람으로 인해, 마음이 상하셨는지를 엿볼수 있는 장면입니다.
4.(10:16)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의 곤고를 인하여 마음에 근심하시니라” 이 한구절을 보고 우리는 하나님의 어떤 성품을 알 수 있습니까?
마음에 근심하니라, 여기서 근심이란 히브리 말은 상당히 번뇌한다는 뜻입니다. 같은 단어가, 사사기에서, 들릴라의 간청에 죽을 만큼 힘들어 했다는 삼손의 마음의 심정에 쓰인 그 단어로 나오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힘들어 하실일은 오로지 사람으로 인해서 인 것 같습니다. 마음대로 하지못하는 것은 그와 우리의 관계가 단지 창조주와 창조물의 관계가 아니라, 바로, 부모와 자식의 관계라는 것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인간의 자유와 하나님의 바램속에서 갈등하시는 그의 모습은 오로지 좋은 것을 자식에게 원하는 부모의 마음과 그것을 모르고 나 좋을 대로 하려고 하는 반역한 자식을 볼 수 있습니다.
5.(*)입다의 배경과 그의 특징을 찾아보고 그것들의 의미를 말해보시오.
입다는 길리앗이라는 아버지의 정부인도, 후처도 아닌, 한 기생에게서 난 자식입니다. 그의 소개를 보면, 두 가지를 알 수 있는데, 어머니가 기생이었다는 핸디캡, 그리고 큰 용사였다는 호칭을 볼 수 있습니다. 비록 그의 출생이 좋지는 않았지만, 남다르게 위풍과 힘, 지혜도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그가, 그의 형제들에게서 결국 거부당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의 남다름에, 형제들이 위협을 느꼈을 수 있습니다. 다른 형제들이 결속하기 시작했고, 입다를 내어 쫓는 과정에서, 지역 사회의 장로들의 동의가 필요했을 것입니다. 그는 형제들에게서 배척당했을 뿐 아니라, 그를 위해, 대변해 주고 옹호해 주는 자가 없었다는 것이 그에게 크나큰 상처이고 트라우마였습니다. 그런 그는 토브라는 땅에서 유린자의 생활을 하게 되고 부랑자들이 그에게 몰려오며 그들의 우두머리가 됩니다.
분명 리더쉽이 있고 힘이 있으며 사람들이 따를만한 인물이었지만, 출생의 신분으로 인해, 주류사회에서 인정받지 못한 아픔이 있는 사람입니다. 그런 아픔이 결국 하나님을 상대하는 자신의 마음에서 까지 믿음이 아닌 잘못된 신앙으로 투영되어 나옵니다.
6.(*)장로들에게 반응하는 입다의 제안을 보고 우리는 무엇을 알 수 있습니까? 그것이 그의 신앙관과 어떻게 이어집니까?
Jdg 11:7 입다가 길르앗 장로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전에 나를 미워하여 내 아버지 집에서 쫓아내지 아니하였느냐 이제 너희가 환난을 당하였다고 어찌하여 내게 왔느냐
Jdg 11:9 입다가 길르앗 장로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나를 데리고 본향으로 돌아가서 암몬 자손과 싸우게 할 때에 만일 여호와께서 그들을 내게 붙이시면 내가 과연 너희 머리가 되겠느냐
길르앗 장로들에게 반응 하는 입다는 분명, 가시 있는 말을 하고 있습니다. 쫓아낼 때는 언제이고 어려우니까, 내게 오느냐~ 과거의 자신의 버림받음의 쓴 뿌리가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곧, 입다는 자신의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는 기회가 왔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머리)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이제까지 기생의 아들로써, 능력도 있고, 특출났다고 생각했지만, 늘 꼬리가 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는 주류 사회에서 머리가 되고 싶었지, 계속 산적들의 두목이나 되고 싶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여기에, 그가 이스라엘의 구원을 위해 나가는 이 싸움에, 조건성을 부여함으로, 그가 받게 될 은혜도, 어쩜 스스로 조건적/ 일시적으로 만들어 가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장로들은 여전히 입다가 그들의 머리가 되기 보다는 장관쯤에서 이 거래에 응하길 바랬습니다. 하지만, 입다 또한 바닥에서 올라온 사람입니다. 세상 물정 다 알고, 이제, 속는 것도 그만하고, 편안하고 인정받고 살고 싶었습니다. 그는 자신에게 온 기회를 더 크게 만들고 싶어했습니다.
하지만, 이 (과연) 이라는 조건,,, if 라는 이 조건성, 거래성 관계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도 드러나고 있음을 입다의 서원에서 알 수 있습니다. (11:30)
"Jdg 11:30 그가 여호와께 서원하여 가로되 주께서 과연 암몬 자손을 내게 붙이시면"
그가 과연 이스라엘을 사랑해서 이 모험을 했냐, 만약 그랬더면, 사사의 면모가 드러났을 수 있었을 건만, 조국에 다한 사랑이나, 하나님의 부르심에 대한 겸비함, 사명감에서 이 전쟁에 입하였다고는 볼 수 없습니다. 그는 살기 위해 했고, 인정받기 위해 했고, 뭔가를 얻기 위해 했습니다. 이런 자신을 위한 거래는 결국 하나님 앞에서 그에게 아무 쓸모없는 것이 되 버리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7.입다의 믿음과, 입다의 불신앙을 말해보시오.
입다의 믿음은 그가 암몬 왕과 나누는 외교적 담화에서 알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역사에서, 분명 하나님께서, 그 땅을 자신들에게 주셨다는 것, 자신들은 평화롭게 지나가기를 간구했지만, 시혼왕이 먼저 전쟁을 걸었고, 그들이 하나님의 도움으로 승리하여 그 땅을 차지 했다는 것, 하나님의 섭리를 이야기 하고 있었고, 이제, 자신과, 암몬왕 사이에서 판단하실 분이 여호와 하나님이시라 --- 계속적으로 여호와 하나님의 역사적인 개입과 그의 현재 진행적인 개입을 말하고 있음으로 이것이 그의 믿음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불신앙은, 하나님께, 조건적인 거래로 다가 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분명 입다에게 신을 부어주셨습니다. 그 말은 이 전쟁에서 그를 통해 이스라엘을 구원하실 것이 하나님의 계획이라는 것이 분명해진 증거였습니다. 하지만, 입다는 하나님의 함께 하심을 끝내, 100% 신뢰하지 못하고, 그의 은혜를 거래로써 잡아 둘려고 시도 했습니다. "과연 내게 붙이시면,,,"
그리고 더 큰 잘못은 그가 하나님께 다가가는 접근 방식이 이방인들이 하는 방식과 별로 다를 게 없었다는 것입니다. 인신제사로 이미 알려진 그들의 적 모압 족속의 방식을 그도 알지 못하게 따르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 벌써, 이방의 인신제사를 혐오하신다고 밝히 말씀하셨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이방신의 등급으로 낮춰 그의 환심을 얻으려고 한 점은 그의 신앙의 최대 과오입니다.
그리고, 더 큰 불신앙은 그것을 그대로 행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서원한 것일지라도, 그것이 죄악이면, 속죄제를 드리고, 하지 않으면 된다고 이미 모세의 율법에 나와 있음에도, 자신의 딸의 생명을 바치는 일은 또다시 하나님을 잘못 알고, 여호와 하나님의 선하심을 만방에, 깍아 내리는 일을 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일을 하게 된 것이고, 잘못된 선례를 낳게 된 것입니다.
8.(*)입다의 서원과, 제물 드림이 그와 이스라엘과, 하나님에게 어떤 의미 였을까 생각해 보시오.
9.(10:8)절에 학대를 당했다의 원어적 의미는 부서졌다 입니다. 우리가 삶에서 종종, 어떻게 부서질 수 있는지, 무슨 말인지 설명해 보십시오.
10.우리가 입다의 잘못된 거래에서 깨우쳐야 될 요지는 무엇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