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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우 목사

갈렙의 "Dog" 같은 신앙



갈렙은 흥미로운 사람이다. 그는 야곱의 씨에서 나온자가 아니다. 그나스 사람이라는 것을 여러 번 강조하는 것을 보아 그것은 좀 더 분명해진다. (물론, 이 그나스를 창세기에 나온 그나스 족으로 해석하지 않는 설도 있다.) 그나스는 에서의 손자이다. 그들은 에돔사람들이랑 관계있다. 성경에서 에돔과, 이스라엘의 관계는 결코 우호적이지 않다. 늘 경계선에서 마찰이 있었고, 문제가 있었다.

중요한 것은, 이 에돔사람이, 역대기상 2장을 보면 갑자기, 유다 지파의 족보에 등장하게 된다. 추론 할 수 있는 것은 그가 유다의 지파에 언젠가부터 받아 들여졌다는 것이다. 이집트에서 일어난 일일 가능성이 높다. 그의 아버지 대에서일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 여분네라는 그의 아버지의 이름을 누차 언급하는 것을 보아, (또한 어떤 곳에서는 여분네 대신에 그나스가 아버지라고 나온다. 상당히 복잡해 진다.) 이곳에서, 야곱의 아들, 유다, 유다의 아들 베레스가 낳은 아들, 헤스론에 관해서 두 아들만 이야기 하다 (9절), 갑자기, 갈렙이 헤스론의 아들로 18절에 등장한다. (헤스론의 아들로도 나온다) 유대인들은, 갈렙이 이방인이었다고 가르치지 않는다. 역대기상 2상을 근거로, 갈렙을 유다 지파의 순수한 혈통으로 보고 있다. 모세의 손을 들고 받쳐 주었던 훌의 아버지라고 말한다. 이것은 좀 납득하기기 힘들다. (40살에 가나안 땅을 갔는데, 모세의 손을 들었던 그의 아들이 도대체 몇살이겠는가? ) 그래서, 역대기상 4장에 나오는 갈렙과 이 갈렙을 차이를 두어 보는 관점도 유력하다. 어쨌거나, 갈렙이 누구냐에는 아직도 의견이 분분하다.---

여호수아, 14장과 15장을 보면, 갈렙은 그의 유업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하러 온다. 그는 가나안 땅에서 가장 좋다라고 할 수 있는 땅을 여호수아에게 요구한다

Jos 14:6 때에 유다 자손이 길갈에 있는 여호수아에게 나아오고 그니스 사람 여분네의 아들 갈렙이 여호수아에게 말하되 여호와께서 가데스 바네아에서 나와 당신에게 대하여 하나님의 사람 모세에게 이르신 일을 당신이 아시는 바라

Jos 14:7 내 나이 사십세에 여호와의 종 모세가 가데스 바네아에서 나를 보내어 이 땅을 정탐케 하므로 내 마음에 성실한 대로 그에게 보고하였고

Jos 14:8 나와 함께 올라갔던 내 형제들은 백성의 간담을 녹게 하였으나 나는 나의 하나님 여호와를 온전히 좇았으므로

Jos 14:9 그 날에 모세가 맹세하여 가로되 네가 나의 하나님 여호와를 온전히 좇았은즉 네 발로 밟는 땅은 영영히 너와 네 자손의 기업이 되리라 하였나이다

9절의 갈렙의 말을 인용하면, 모세가 분명 갈렙에게, 갈렙이 걸었던 그 땅을 준다라고 했다고 한다. 분명 정탐꾼으로 그가 나이 40세에 임무를 받아 가데스 바니아에서 나가 땅을 보았던 그 땅인 것이 분명하다. 12명이 계속 같은 곳을 같이 정탐할리는 없다. 12명이 나눠서 정탐한다. 나중에 그들에서, 그로 바뀌는 대목으로 보아 (원어에서만 찾을 수 있다), 갈렙은 혼자 헤브론과 네게브 지역을 정탐한 것 같다. 누군가 하나가 헤브론으로 왔다고 한다. (민수기 13장 22절)

헤브론은 가나안에서 가장 높은 지역중에 하나이다. 그곳은 또한 역사와 전통이 있는 곳이다. 아브라함이 살았던 곳이고, 그들 식구들이 모두 장사되어 안장되어 있는 곳이었다. 아브라함에게 주신 하나님의 약속을 생각하면, 그곳이 분명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가장 의미있고, 또한 객관적으로도 아름답고 풍성한 곳이었음에 틀림없다.

하지만, 문제가 있었으니, 거기에는 아나킴이라고 하는 거인들이 있었다. 네피림의 후손들로, 그들의 존재는 창세기, 노아의 홍수때로 올라간다. 네피림에 관한 것은 정경이 아닌, 외경 에녹서를 보면 잘 알수 있다. 성경에서, 이들은 여러 이름으로 불리고 있는데, 르파임, 에밈, 잠주밈, 뜻도 무시무시하다. “공포, 공포스러운 자들, 죽음, 유령 같은, 그림자, 다른 언어를 쓰는 자들”. 그 중에 대표적인 예가 모세 때 처치했던, 옥이라는 바산의 왕, 그의 침대 길이가 3미터 80가량 되었다. 골리앗과 그의 형제, 그리고, 성경에 손가락 6개가 달린 자들도 다들, 이 아나킴과 관련이 있다.

갈렙이 밟았던 가장 아름다웠던 그 땅은, 아름다웠던 만큼이나 가장 무시무시한 자들이 지키고, 살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갈렙이 봤던 그 땅, 그리고, 그 땅을 봤을 때, 생겼던 그 감동과 끊어오르는 희망, 열정,, 그는, 장애물을 대수롭지 않게 보았다.

랍비들의 전승은, 갈렙이 자신의 의견을 결국에는 숨겨야 했다고 한다. 그 말은 이해가 된다. 열두명이 말을 맞추어 하기로 했다는 것이다. 원래 갈렙은 반대의견을 냈으나, 나머지의 반대로, 자신도 동조하듯이 결국 장단을 맞추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 모두 앞에 섰을 때, 그는 그 동의를 깨고 얘기하는 것이다. 그렇담 정탐꾼들은 무엇을 이야기 한 것인가? 그들은 가나안 땅의 거민들이 다 장대하다고 한다. 그리고 그들 중 거인들도 거한다고 했다. 사실 그대로를 이야기 한 것 같다. 하지만, 거기서 그들은 그만 뒀어야 본전은 거뒀을 것이다. 그리고 나서, 그들이 짜 맞춘 것 같은 보고를 하는 것이다. 우리는 그 땅을 능히 얻지 못할 것이라- 이 말을 하는 것이다. 이것은 여호와 하나님이 약속한 것이랑 완전 상반되는 이야기 이다. 자신들의 소견을 이야기 하고 있다. 스파이들은 뭔가 대단히 착각하였다. 정탐을 해서 객관적인 사실을 말하면 되지, 자신들이 받아들일 수 없는 일에 대해, 하나님을 도리어 거짓말쟁이로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백성들에게 그런 잘못된 관점을 자신들에게 주어진 특혜자의 위치로 설득시키는 것이다.

하지만, 갈렙과 여호수아는 옷을 찢는다. 백성들을 돌이킬려고 힘쓴다. 그러다 돌을 맞을 뻔한다. 이 일로 인해 하나님이 진노하시고, 40년 동안 광야에서 그 세대 전체가 하나 둘씩 다 죽는다. 38년 동안 백만명의 사람이 다 죽으려면 하루에 평균 70명가량이 죽어야 한다. 이렇게, 날마다 죽는 사람들과 사별하고, 그들을 보는 것이 갈렙과 여호수아가 겪어야 했던 일이다.

하지만, 이 40년 기간, 갈렙은 한번도, 자신이 밟았던 그 땅을 잊어 본 적이 없었다. 그리고, 그 사건이 있은 후 분명 모세가 하나님에게 들은 말씀을 갈렙을 불러 이야기 했음에 틀림없다.

Deu 1:36 오직 여분네의 아들 갈렙은 온전히 여호와를 순종하였은즉 그는 그것을 볼것이요 그가 밟은 땅을 내가 그와 그의 자손에게 주리라 하시고

“네가 밟았던 그 땅을 여호와 하나님이 반드시 주실 것이다. 네가 그렇게 좋고 아름답다고 한 그 땅을 여호와 하나님이 네게 주리라.” 갈렙은 이 약속을 40여년 동안 한시도 잊지 못했을 것이다. 그 날을 준비하며 살았을 것이다. 이제, 그로부터 45년이 지난 지금에, 그는 여호수아에게 간다. 그동안 유다의 지파에서 그의 동료들과 형제들과 함께 같이 싸웠다. 싸우고 이기고 점령한 곳들이 분배되는 것을 보았다. 하지만, 역시 헤브론이란 곳은 누구도 건들지 못하는 것이다. 거인들이 있어서 그런것일까, 그 유명한 아낙의 자손, 아히만과 세새와 달매가 있어서 그런 것일까.. 상관은 없다. 아무도 건들수 없는 것이 괜찮다. 갈렙은 속으로 생각했을 것이다. 저곳은 나에게만 허락된 약속의 유업이기에. 하나님께서 약속한 기업이기에..

그래서, 여호수아에게 오늘 마지막으로 나가 그때의 약속을 상기시켜준다. 그냥 나가서 싸워도 될 것이었으나, 그는 그곳이 누구에게도 분배될 수 없는 자신의 기업이라는 것을 당당히 요구한다. 오늘, 여호수아서 14장에 나오는 갈렙의 이야기에서 가장 두드러지게 나오는 단어는 “주다” 이다. 또한 15장에 나오는 갈렙의 이야기에서도 이 “주다” – 나단이라는 단어이다. 후에 21장에 나오는 갈렙의 언급에서도, 이 “주다”라는 단어가 가장 강조되는 것 같다. 당당하게, 달라, 또, 권위자가 흔쾌히 주고 있는 것이다. 자세히 들여다 보면, 받을 만한 일들을 스스로 한다. 대가 없이 달라고 하지 않았다. 그는, 가장 무섭고 강하기로 소문난 거인 형제들을 몰아내는 것이다. 85세의 노인이.

우리는 이 갈렙의 성공을 어디서부터 찾아야 하는 것일까, 물론, 믿음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것이 믿음인지 우린 좀 형상화 할 필요가 있다. 내가 생각하기에, 갈렙의 거북한 이름이, 이 믿음을 형상화 하는데 좀 도움이 되지 않을 까 생각해 본다. 갈렙이란 이름을 풀면, “개” 이다.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누군가 자신의 자식의 이름을, “개”라고 지을 수 있다니. 그의 아버지가 이스라엘을 쫓아 왔을 때, 그의 아들의 신분이 “개” 취급을 당할 걸 알고, 아버지가 지은 이름인 것일까? 스스로 개명한 이름인가? 다른사람들이 지어준 이름인가?

자신의 이름이, “개”라는 것을 갖고 가야하는 인생이라면, 도대체 어떠한 멘탈로 살게 될까? 이방인은 유대인에게서 “개” 취급을 당한다. 지금도, 유대인의 세계관에서는 이방인은 개와 같은 레벨에 있다. 예수님도, 가나안 여인을 유대인들의 관점으로 접하셨다. 하지만, 그 여인의 반응은 어땠는가.. 그 까내림을 태연히 삼킨다. 아니, 믿음으로 삼켜 버린다. 믿음의 입을 열어, 자존심의 비위를 넘겨 버린다. 믿음의 식욕이 컸기 때문에, 그녀는 그의 딸을 돌려받았다.

오늘 갈렙은 어쨌거나, 이방인으로써 하필, 이름도, “개”이다. 하지만, 그는 믿음의 비위가 강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가 갖고 있는 모든 안 좋은 개의 이미지에서, 우리가 가지고 있는 모든 좋은 개의 이미지로 자신을 탈바꿈한다.

“개”하면, 생각나는 가장 좋은 것은 무엇일까? 바로, 충직, 충성이다. 주인에 대한 변하지 않는 마음이다. 주인이 가는 곳이면, 어디든지 가는 것이 개의 본능이고, 개의 가장 높이 살 수 있는 기질이다.

오늘, 갈렙을 한번 본다. 그가, 이 헤브론, 가나안 땅 가장 아름다웠던 그 땅을 차지 할 수 있었던 그 성공의 원인은, 그는 정말 “개” 처럼 살았기 때문이다. 누구를 모시는 “개” 처럼 살았나? 여호와를 주인으로, 그를 충직하게 따르는 “개” 처럼 살았기 때문이다. 성경은 갈렙에 대해 설명하는 미사여구가 없다. 단지, 반복해서 그가 어떻게 하나님을 믿었는지를 우리에게 그려준다.

Num 14:24 오직 내 종 갈렙은 그 마음이 그들과 달라서 나를 온전히 좇았은즉 그의 갔던 땅으로 내가 그를 인도하여 들이리니 그 자손이 그 땅을 차지하리라

Deu 1:36 오직 여분네의 아들 갈렙은 온전히 여호와를 순종하였은즉 그는 그것을 볼것이요 그가 밟은 땅을 내가 그와 그의 자손에게 주리라 하시고

Jos 14:8 나와 함께 올라갔던 내 형제들은 백성의 간담을 녹게 하였으나 나는 나의 하나님 여호와를 온전히 좇았으므로

Jos 14:9 그 날에 모세가 맹세하여 가로되 네가 나의 하나님 여호와를 온전히 좇았은즉 네 발로 밟는 땅은 영영히 너와 네 자손의 기업이 되리라 하였나이다

Jos 14:14 헤브론이 그니스 사람 여분네의 아들 갈렙의 기업이 되어 오늘날까지 이르렀으니 이는 그가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온전히 좇았음이며

갈렙의 인생의 특징 두가지 요소가 나온다. 그는 충직했다. 한가지 요소이다. 그리고, 충직한 대상이 여호와 하나님이었다. 이 두가지 요소가, 그를 갈렙되게 한 것이 아닌가.

사람들 중 어떤이는 충직하다. 친구에게, 가족에게, 돈에게, 직장에게, 또 어떤 사람은 그렇지 않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을 따른다. 하지만, 충직하지 않게 따르는 자들이 더 많다. 이 두가지 요소를 결탁한 삶을 갈렙은 산다.

그는 여호와 하나님을 온전히 좇았다고 한다. 이 말은 뒤에서 따라간다라는 말이다. 정말, 개가, 그 주인을 따라가듯이, 충직하게 그 뒤를 따라가는 모습..

그의 성공이 담대함이다, 그의 성공이 믿음이다. 그의 성공이 배짱과 남다른 지도력이다.. 그 전에, 우리는 그가 이방인이었지만, 누구보다도 충직하게, 여호와를 따랐던 자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스라엘 백성들 앞에 그의 나이 40세에 당당함으로 그의 신앙의 고백처럼, 믿음으로 가나안 땅은 우리것이요 라고 외칠 수 있었던 것은,,, 그는 그 40년동안을 여호와 하나님만을 따른 신앙의 발자국이 있었기 때문이다. 10명의 신앙인들이 아니라고 했을 때, 1명의 참 신앙인은, “예스” 라고 할 수 있다.

그가 과연 스스로에게 배짱이 있어서 그랬을 까.. 앞에가는 주인을 이는 누구보다 신뢰하는 것인 거 같다. 주인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던 것 같다. 주인의 행로와 방향을 늘 캣취하고 있었기에, 그도 그렇게 잘 따라 같던 것 같다. 주인의 가는 길을 파악하는 개,, 보통개가 아니다. 또한 다른 것을 보지 않고 주인만 바라보는 개. 변함없이 주인에 대한 애정과 사랑을 보이는 것, 이 모든 것이 충직한 개의 특징이다. 광야에서 그는 주인을 따르는 법을 마스터 했던 것 같다.

여호수아의 대 서사시는 결국, 갈렙의 헤브론 정복의 이야기로 막을 내린다. 갈렙의 유업을 결국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으로 가나안 땅의 에픽 스토리는 끝나게 된다. 무엇보다, 하나님을 충직히 따랐던 갈렙이 모든 이의 귀감이 될 만하다는 것 아닌가. 가나안 땅의 정복의 성공의 대표적 예는 갈렙의 스토리가 아닌가. 그렇담, 갈렙처럼 하면 되는 것이 아닌가. 오늘 갈렙을 보며 성공하는 신앙인을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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